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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겨울역* 겨울역/담채 종로5가, 눈물의 바람꽃 옆구리에 피는 지하도 바닥 독한 추위를 바르고 한쪽에 몰린 사내가 빈 박스를 덮고 모로 누워있다 막차가 지나가는 태양계에서 가장 먼 끝 피폐한 삭신에 횡행한 겨울 바람의 칼침이 꽃힌다 산다는 건 천상의 기도 같은 것 따로 풀어야 할 화두도 없다 숨소리조차 세상을 피한 듯 조용한 저 사람 세상에서 따로 나 앉은 듯 미동도 없이 목숨 끈을 잇는다 *** 며칠 후면 구정이다. 태양계에서 가장 먼 끝, 추운 곳에 놓인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기를 기도하는 겨울밤이다. 이순간에도 생명 있는 것들의 간절한 번뇌가 부디 외면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쓴다. 2022. 11. 2.
갯마을* 갯마을/담채 1 달의 힘을 물려받은 바다는 거대한 인력引力으로 섬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깨진 유빙 조각 떼 지어 떠내려가는 천수만 한쪽 한 무리의 아낙네들이 언 바다에 엎드려 굴을 쪼고 있다 한 손에 조새* 쥐고 한 손에 양재기 들고 송곳 같은 바람 뒤집어쓰고 굴을 쪼고 있다 누군가는 뼛속에 바람이 들어서 오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길을 잃는다 바다는 이 마을의 누대의 허기를 다스려왔으므로 오래된 허기들이 한사코 바닷속으로 빨려 드는 것이다 뼛속에 바람이 든 사람들이 간간이 먹먹한 혈穴을 짚으며 노란 양재기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 별이 되려다 한恨이 된 굴이 연신 글썽거린다 한 걸음 달아나면 두 걸음 따라오는 바다 달이 힘껏 들어 올린 바다가 가장자리를 내어주자 퉁퉁 부어오른 발목들이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바.. 2022. 11. 1.
그럭저럭* 그럭저럭/담채 그럭저럭이란 말, 이 어정쩡한 말은 잘 지내지도 않고 못 지내는 것도 아닌 조금은 쓸쓸한 쪽으로 기우는 말이다 사실 지금은 가진 것 내리며 빈손으로 앉아서 빛의 속도로 낙하하고 있는 것인데 누가 ‘어떻게 지내십니까?‘ 물어오면 그럭저럭 지낸다고 답한다 말이란 짓고 허무는 데 생각이 우선해야 한다 점점 저물어가는 나의 대답은 침묵으로 대신할 일이다 2022. 11. 1.
길 위에서 65 - 유전遺傳에 대하여* 길 위에서 65 - 유전遺傳에 대하여/담채 작은 꽃씨 하나에 꽃의 일생이 설계되어 있다 콩은 콩으로 감자는 감자로 고추는 고추로 유전자의 지도는 완벽하다 어머니는 나에게 당신의 유전자 지도를 내려주셨다 이 神聖으로 말미암아 나는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와 하나의 입을 가지고 태어났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유전자는 경배 받아야 한다 갈대가 나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유전의 기록 위에 神이 존재하신다 2022. 10. 26.
까치집* 까치집/담채 저 막막한 허공에 시렁처럼 걸쳐있는 둥지 하나 움푹 들어간 옆구리가 춥다 창도 없고 기둥 하나 없이 뚫린 지붕 못질 하나 없이 홀로 선 불멸의 오막살이 쉬임없이 바람이 들었겠다 바람과 바람 사이 가슴털을 뽑아 아랫목을 만들고 혹시 내릴 눈과 빗방울의 크기를 계산하여 건축물을 완성했을 것이다 지붕을 열어 젖히면 금방이라도 낮달이 쏟아질 것만 같은 둥지 잉태를 계획하는 까치가 種을 위하여 홀로 외롭다 note 못질 하나 없이 홀로 선 불멸의 오막살이, 저 높은 곳에 집을 세운 이 部族들의 건축술이 감탄스럽다. 바람 속에 터를 잡으며 까치부부는 어떤 의견을 교환했을까. 문득, 새들의 언어가 궁금하다. 2022. 10. 25.
채송화* 채송화 / 담채 나는 키가 작다 땅과 더 가깝다 땅에서 땅으로 줄기를 뻗는 손과 발에선 흙냄새가 난다 나는 키가 작아서 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길을 겹겹이 으서지며 기어서 가면 그리운 단 한 사람 거기 있으려나 2022.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