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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마당을 쓸다* 마당을 쓸다/담채 늙은 감나무 한 그루 일제히 잎을 내린 마당 백발의 사내가 밤새 어질러진 마당을 쓴다 동트기 전 어머니 빈 단지 속 근심을 오래오래 닦아내듯 마른 몸 구부리고 마당을 쓴다 간밤 달 별 구름 바람 소리 없이 지나간 마당 죄송스러운 내 허물 무수히 쏟아졌으리 내 靈魂의 게으른 손 살아온 날들의 그림자 얼마나 지울 수 있을까 애써 나를 쓸어내던 대빗자루 불현듯 고쳐 잡고 내 안을 쓸어내는 아침 一生 벗지 못한 누더기 한 벌 외로움도 쓸고 있다 2022. 10. 22.
조용한 布施* 조용한 보시布施/담채 ​ 바랑을 멘 노승이 끙끙, 겨울 산을 넘네 눈 덮인 겨울 산을 가다가 돌아보고 가다가 돌아보고 멧새가 날아올까 어디 먼 데서 굶주린 날짐승 찾아올까 노승이 상수리나무 아래 일부러 멈춰 흰 눈 위에 탁발 알곡 뿌리시네 짐으로 남은 인연 하나씩 하나씩 버리는 것과 같이 종일 모은 탁발 알곡 다 쏟아붓고 구름 몇 장 데리고 겨울 산을 넘네 2022. 10. 19.
관계* 관계/담채 너, 라는 나, 라는 낡은 단어가 푸릇푸릇 날개가 자라서 어깨를 주면 우리가 되고 가슴을 주면 사랑이 된다 모든 인연은 태양 같은 것 지금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중이다 2022. 10. 13.
마지막 월급날* 마지막 월급날/담채 박봉 35년 마지막 월급날 바닥이 드러난 월급통장을 쥐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 아슬아슬한 월급에 일생이 묶여있었나 이 위태로운 소득으로 식구들은 배가 불렀을까 구내식당 밥사발 앞에서 노을 스러지는 퇴근길 위에서 사무치게 날개를 꿈꾸던 내 월급 나는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고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이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온 것인가 소소한 바람에도 늘 흔들리던 길 바람 부는 날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섞이고 싶지 않은 마음들과 손을 잡고 얼마나 무섭게 달려온 길인가 저만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하나가 노을을 감싸 안고 미로처럼 이어져있다 몽상의 언저리를 떠돌던 간절한 밤이 가고 불면의 밤이 오고 새것들이 가고 헌것들이 오고 말을 하고도 할 말이 많은 오늘 마지막 월급을 받아들고 두 눈.. 2022. 10. 11.
복지, 구멍 뚫릴라* 복지, 구멍 뚫릴라/담채 선거가 임박하자 복지성 예산이 수직으로 떨어진다 우리 부서에서 집행하는 '친서민 일자리창출사업’ 수억의 예산 1인당 하루 일당(2012년 기준) 76,000원이다 선거가 끝나기 전 주어진 예산을 무조건 소진하라는 상부 지시도 있다 생활고에 부대끼는 사람에게 가는 복지성 예산인데도 부득이 살림이 넉넉한 자에게도 일자리 기회가 가는 선심성사업은 지속이 된다 목적의 변질이 분명한데도 이를 정정할 사람 아무도 없다 순민한 사람마저 나라 돈은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듯 점심시간 한 시간 반 그늘에 앉아 한 시간 반 30여 명의 인력이 빈몸으로 50여m를 이동하는데도 삼십 분 넘는 시간이 걸린다 (다 그런 것이 아님을 밝히며 열심히 참여한 사람들에게 사죄를 드린다) 선거야 어찌되었건 나라야.. 2022. 10. 8.
밀물이 오는 저녁* 밀물이 오는 저녁/담채 물이 온다 어린 고둥이 숨을 참는다 물이 물을 들여 명치까지 차오르는 내 안의 수위 어떤 뜻이 물과 바람 모래의 거처에 나를 세워 영혼을 흐르게 하고 물은 다시 들어 무엇을 내리며 떠나려는가 저녁으로 갈수록 바다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이생에 전념하는 손들이 물 밖으로 울음을 내밀 때 물금을 새로 그으며 밀물이 오는 저녁 지붕 위에서 고양이가 길게 운다 사람들은 물 위에서 장엄한 하루를 살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새들은 치성을 드린다 바람을 따라가다 지친듯 멈춘 만조滿潮의 끝물 한쪽이 패인 낮달이 진다 2022.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