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作詩219 밥 밥/강성백 벼가 익는다 낮은 물에 발 담그고 벼가 익는다 수수 천 년 빈 그릇에 메아리 지는 허기를 뜨겁게 덮어온 저 이삭들 저것들이 한 사발 흰 쌀밥으로 내 앞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바람 지나갔으랴 삼복염천의 정수리를 가장 오래 걸어온 기도가 들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시간 뜨겁고 망극한 아침밥 한 그릇이 나를 주저앉힌다 2020. 8. 21. 하루살이 하루살이/강성백 가로등 앞 하루살이 떼 어지러이 날고 있다 첩첩의 어둠을 뚫고 와 다비를 기다리는 일촉즉발의 목숨들 저들은 빛을 사랑한 罪로 단명한다 짚불 같은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다 무엇으로 죽는가 안면도2009. 07 안면도에서 2020. 8. 12. 갯마을 --- '석화'님의 작품(바람아 구름아...) 중에서 --- 갯마을 /강성백 1 달의 힘을 물려받은 바다는 거대한 인력引力으로 섬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깨진 유빙 조각 떼 지어 떠내려가는 천수만 한쪽 한 무리의 아낙네들이 언 바다에 엎드려 굴을 쪼고 있다 한 손에 조새* 쥐고 한 손에 양재기 들고 송곳 같은 바람 뒤집어쓰고 굴을 쪼고 있다 누군가는 뼛속에 바람이 들어서 오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길을 잃는다 바다는 이 마을의 누대의 허기를 다스려왔으므로 오래된 허기들이 한사코 바닷속으로 빨려 드는 것이다 뼛속에 바람이 든 사람들이 간간이 먹먹한 혈穴을 짚으며 노란 양재기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 별이 되려다 한恨이 된 굴이 연신 글썽거린다 한 걸음 달아나면 두 걸음 따라오는 바다 달이 힘껏 들어 올린 바다가 가장자.. 2020. 8. 6. 밤비 밤비/강성백 비 내리네부옇게 먼지가 일던 世上에 가뭄에 시달린 물고기 하나아스라이 길 떠나네 적막의 질그릇에 고이는 獨對의 빗소리가 한없이 끌고 가는 육중한 밤이여1991.08 2020. 8. 6. 수의壽衣* 수의壽衣 /강성백 노모께서 손수 壽衣를 장만하셨다 수의는 마지막으로 生을 덮고 저 세상으로 훨 훨 날아서 가라는 옷이다 다시는 벗을 수 없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여서 여미는 옷이다 세상 마지막 길은 쥐고 갈 것이 없으므로 누구의 것이나 주머니가 없는 옷이다 일생 主의 발 밑에 엎드린 무릎 아픈 어머니가 聖衣를 모신 듯 장롱 깊숙이 정히 모신 삼베옷 한 벌 이미 한 生을 떠나 따로 나앉은 듯 홀로 깨어 이승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누구나 제손으로 입을 수 없는 온몸으로 품었던 세상을 반납하고서야 비로소 입혀지는 마지막 한 벌의 옷 질기고 거친 삼베 자락 그 성근 결 사이로 눈 내리고 비 내리고 거친 흙바람이 지난다 이제, 더 이상 간섭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남은 生의 거리를 재는지 시간이 빠르게 개입하고.. 2020. 7. 31. 詩의 길 詩의 길/강성백 詩의 길은 멀다 詩人은 고독에 대하여 그리움에 대하여 결론을 내려야 한다 누군가는 세상을 가장 오래 적실 아직은 해독되지 않은 고독의 길을 그리움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note 詩를 쓰듯이 정성껏, 거미는 제 집을 짓는다 끊임없이 이어져 온 섬세한 사유思惟를 줄줄이 쏟아내지만 어느 누구도 그 거미에게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다만, 몇몇의 날파리가 걸려들어 앵앵거릴 뿐이다 2020. 7. 27.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 3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