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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먹어야 산다* 먹어야 산다/담채 막내딸 보고 싶은 늙은 어머니 분당에 가시고 초로의 사내가 밥을 짓는다 담배꽃 피고 진 뒤 홀로 남은 씨앗처럼 쩔쩔매는 늦가을 저녁녘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나에게 답을 하며 저녁밥을 짓는다 누구 하나 없이도 生의 보풀은 일어 끼니마다 끓는 허기 肉身이란 도리 없이 배가 차야 일어나고 배가 비면 주저앉는 것을 산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일이다 안 먹으면 죽고 먹으면 산다 2021. 9. 17.
비雨 - 2011 여름* 비雨 - 2011 여름/담채 무장 무장 비가 내린다 거리는 물바다가 되고 곡식은 물벼락 뒤 태풍으로 생장점을 잃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시험에 들고 지상에서 쏟아낸 눈물이 다시 비가 되어 지상으로 쏟아진다 40주야 비가 내리면 노아의 홍수가 오고 40주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막이 된다 비를 내려 물로써 심판했던 노아 홍수 후에도 인류는 살아남았으나 비극적으로 빙하기 얼음이 녹아내린다 언젠가는 화성의 봄을 찾아 우주의 밀밭을 찾아 지구를 떠나야 할 때가 온다 나무에게도 풀포기 하나에게도 이주의 꿈이 있다 2021. 8. 24.
봄날이 간다* 봄날이 간다/담채 고추 벌레 구멍 같은 길을 침묵으로 뚫고 온 꽃 한 송이 달걀 3개로 석유 한 홉을 바꿔등잔 불 밑에서 읽었던 소설책처럼 읽고 또 읽는다 꽃잎은 한없이 아름답고 가벼워 바람이 데려가는가황사가 지나간 후 꽃이 보이지 않는다꽃을 보러 왔던 새들도 산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만 툭, 부러져 놓아주고 싶은아름다운 것들이 쇠잔한 老年에 표착한 봄날이 샛길 하나 없이 진다  note 이제 또 다른 불안을 내 허파에 기른다작고 소외된 것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그것들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가장 중요한 얘기를 가장 순한 것들에게 걸어서 대화를 나눈다초긴장과 같은 이름 모를 어느 生의 삶과 죽음의 순간을 가장 따뜻한 언어로 옮기고 싶을 때 나는, 나에 대하여 자연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한 .. 2021. 5. 27.
어부漁夫* 어부漁夫/담채 물질을 마치고 허우적허우적 뱃머리에 솟구치는 젊은 해녀海女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 꽃물 게워내는 중이다 수백 미터 밖에서도 피 냄새를 맡는다는 식인상어가 미친 듯이 달려와 그녀를 덮쳤다 톱날 같은 이빨이 그녀를 찢어발기며 수중으로 사라진 눈 깜짝할 사이 이 절박한 순간에도 한 배船를 탄 어부 남편은 무용지물이다 어부는 물거품 위로 떠오른 아내의 마지막 눈빛과 찢어진 잠수복 조각과 가닥 가닥 끊어진 창자 몇 조각을 수습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투명 비닐봉지 속에 들어간 서른 셋 아내의 무게가 소라 몇 개의 무게보다 더 가벼웠다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는 이리저리 물결에 떠밀리던 살점들이 물 밖 세상을 단단히 움켜쥐고 한데 엉겨 붙어 있었다 note 30여 년 전 서해 안면도에서 젊은 해녀가 식.. 2021. 5. 23.
아버지* 아버지/담채 달밤에 쇠똥구리 하나 제 몸보다 열 배나 큰 바위를 힘겹게 굴리며 가고 있구나 저 위대한 노동이 묵묵히 끌고 온 슬하 아, 아버지 허기로 저무는 길 위에서 자꾸만 물이 켰으리 아버지의 등/담채 자정 넘어 아버지 검은 등이 형광등 아래 쓰러져 있다 수백 년 노송의 몸피 같이 굳어있다 조용한 목마름이 저 등을 타고 흘렀을 것이다 지친 등이 힘을 모아 웅크리고 나귀처럼 잠든 밤 철부지 육 남매 포개 업고 동트는 새벽 들판 달리는 소리 들린다 2021. 5. 13.
그 길* 그 길/담채   그리운 한 사람저 멀리 어디엔가 있다 그 아득한 세상이 닿지 못할 곳이어도 좋다강물이 흘러가고비극 같은 계절이 흘러가고여기쯤에서 돌아서고 싶어도돌아서다가 다시 보고돌아서다가 다시 보는 그 길 2021.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