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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철밥통* 철밥통/강성백 배가 고픈 어미 소와 새끼소에게 여물을 주면 어미 소는 새끼가 여물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축생에게도 이토록 엄연한 위아래가 있거늘 xx군청에 상담할 일이 있어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제법 공손한 듯싶더니 몇 마디를 건너가자 “어~ 어~, 음~음~” 거의 반말투다 60년 풍상 벌써 지나간 내 나이 목소리만으로도 나이 대를 짐작했을 텐데 자식 또래 철밥통은 끝까지 당당하다 나는 끝까지 존댓말을 썼다 들녘에서는 다 익은 이삭들이 고개를 숙이는 망극한 계절이다 2022. 5. 8.
물의 조각* 물의 조각/담채 바람이 불 때마다 바다는 물금을 새로 긋는다 물금을 그으며 새로운 무늬가 결정지어질 때마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고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이 고요히 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한조각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듯 생명이란 그렇게 생겼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인류와 바다로 아프게 꼬여있는 끈 애초에 내 뼈는 바다에서 온 것임을 나는 믿는다 어느 순간 부레를 잃고 지상으로 옮겨진 나는 바다의 종족,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지상의 명단에는 내 이름이 없었으므로 어머니의 첫부름이 들려오는 최초의 기억의 밑으로 밑으로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닥 언제 멸종될지 모를 어족들이 어슴푸레 떨어지는 빛을 감고 영생에 몰두한다 어느 염원이 간절함을 지나 내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진화의.. 2022. 4. 13.
어머니의 바다* 어머니의 바다/담채 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오면 어머니는 으레 바다로 나가셨다 거기가 무덤인 줄 모르고 풍랑이 데려간 아버지 발치에서 바지락을 캐냈다 바람과 바람이 부딪쳐 흐느끼는 갯벌밭 어머니가 몸을 말고 바지락을 캔다 세상의 마지막엔 바다가 올 거라는 어머니 어머니는 반나절 넘게 바다가 내어주고 있는 바지락을 정해준 몫만큼 캐고 나서야 무릎을 폈다 움푹한 모래바닥 한쪽에 바지락조개들이 모아져있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바구니에 옮겨 담고 바닷물에 흔들어 씻었다 그런 다음 속이 빈 것들을 일일이 골라냈다 아버지는 어부였다 들물 무렵, 짜디짠 바닷 속 이야기 고루 묻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마늘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머릿수건을 벗어 흙먼지를 탁, 탁 털어내고 끓여주는 바지락 국물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사십 년.. 2022. 4. 11.
낙엽落葉* 낙엽落葉/ 담채 내 낯빛을 닮은 저 낱낱의 잎 잎 한 뿌리 한 가지에 기대어 살면서도 서로를 모르는 채 길을 접는다 낙엽이 되고서야 서로 만나 층층 켜켜 서로 닿아 비로소 한 곳으로 가는구나 2021. 11. 25.
첫사랑* 첫사랑/담채 그의 우물 속에 돌을 던지면 오래 있다 ‘풍덩’ 소리가 났다 한 번 들어간 바람이 다시 나오지 못하는 까마득한 비밀의 신전神展 멋모르고 가라앉은 바람과 구름과 지상에서 내려간 소리들 켜켜이 이끼로 피었겠다 사랑은 황홀을 동경하므로 시시각각 착시錯視를 불러들인다 바람은 언제나 한쪽으로만 불어 스스로 만든 덫에 삶을 다치고 마음을 벤다 간절한 사랑은 아득한 곳에 있으므로 2021. 10. 21.
백발白髮을 감추다* 백발白髮을 감추다/담채 한 번도 염색을 해본 적 없는 내 백발은 가까이에서 보면 희고 멀리에서 보면 안 보인다 80넘은 노모가 출근하는 아들 뒤통수에 대고 염색 좀 해라 성화시다 어디에나 이런 흰 머리는 있다 햇빛을 삼킨 정수리가 오늘 따라 중심을 잡고 빛난다 오랜만에 이발소에 간 날 머리를 맡겨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 검은 빗이 지날 때마다 파뿌리 같던 머리칼이 검게 물이 든다 하얀 머리털이 검게 변할 때마다 한 발짝씩 되돌아오는 세월 저 편의 시간들 머리를 감고 거울을 들여다보자 잠깐 돌아온 세월이 나를 오독한 듯 주춤거린다 세상에는 붙잡지 못한 풍경들이 많다 검게 변한 머리가 한 사람의 바깥을 얼마나 떠받칠 수 있을까 쓸모도 없는 검은 빛이 외형을 잠시 바꿔놓은 것 뿐이리라 문득 릴런드 스탠퍼드*의 .. 2021.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