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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독방獨房* 독방獨房 /담채 묵언으로 닿는 천리 길 이 길은 오직 나만이 안다 1년, 2년... 30년 나는 왜 경계 안에서 오지 않는 것을 그리워하는가 오늘도 나무는 혼자서 뿌리를 내리고 오로지 나 하나 끝없이 데려가는 밤바람 소리 적막도 거룩한 침실에 흰 달빛 무엇하러 드는가 2012.11 安眠島에서 note 아내와 남매를 서울에 올려놓고 30년이 지난다. 그리움 쪽에서 자꾸 바람이 불어왔다. 먹고 산다는 것, 다음 生에는 초식동물로 태어나도 좋겠다. 2021. 4. 9.
덩굴장미 덩굴장미/담채 장미 피었네 철제 울타리 너머까지 뻗고 뻗어 덩굴장미 만발했네 바로 앞 새로 지은 아파트와 내가 사는 '재건축안전진단' 현수막이 걸린 이 아파트는 불과 길 하나 사이 새 고층 아파트엔 가련한 투기꾼들 많이 살고 이 아파트엔 월세 전세 집 없는 사람 나와 같은 낡은 사람들 많이 사는데 세상모르고 장미가 피네 나이 들어 더는 갈 곳 없어 나이 많은 아파트에 오래 살고 있는 나 저 꽃, 오래 바라보네 보금자리가 뭔지 영끌이 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장미 세상 모르고 꽃이 피네 note 꽃은 그냥 피는게 아니다. 世上이 꽃이 되라는 것이다. 2021. 4. 4.
가시 옷* 가시 옷/담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문 앞에서 웅성거렸다 현관문이 열리자 겨우내 고여있던 냄새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집 안에서 공기를 나눠 마신 노부부가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그 집은 더 이상 문이 열리지 않았다 두 노인이 사이좋게 나눠 마신 공기가 퉁퉁 불어 온 동네를 떠돌아다녔다 사람들은 가시 옷을 입고 바람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매일 가시가 박힌 옷을 입고 어떤 거리만큼 사람이 사람과 멀어져야 자신의 뼈와 자세를 지켜낼 수 있다고 믿었다 늙은 딸이 더 늙은 엄마가 보고 싶어 요양원을 찾은 날도 따로따로 공기를 쪼갠 후에라야 눈이라도 맞출 수 있었다 압축이 풀린 바람이 불안과 의심을 연신 몰고 오는 허공의 반란, 사람들은 허공에 대한 끈질긴 질문을 던지며 서로 더 멀어지고 가시 옷은 더 두꺼워졌다 이때부.. 2021. 4. 2.
과식過食* 과식過食/담채 빈 화분에 옮겨 심은 고추 모가 두 뼘 넘게 자라있다 베란다 창가에 우두거니 서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거실에 걸린 TV를 보면서 저만큼 자랐다 습한 바람이 느리게 안개를 먹는 아침 무럭무럭 성장할 것을 당부하며 복합비료 한 줌을 덤으로 얹어주었다 불과 열두어 시간 뒤 잎이 시들고 줄기가 휘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실뿌리 쪽에서 더 이상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나친 섭생이 毒을 부른 것이다 남의 돈 먹다 수갑 찬 정치인 또 TV에 나온다 베란다 창가에 서서 날마다 TV를 시청하던 고추 모들 수천 수만의 길을 내며 썩은 냄새를 어루만졌으리라 허공의 맛을 아는 이슬 투명히 흘러내리는 초여름 아침 새들이 날아가는 공중이 더없이 환하다 2021. 3. 23.
부활 부활/담채 태풍 지나간 새벽 바다 간밤 태풍에 물 밖으로 떠밀린 어린 물고기 하나 죽은 듯 누워있다 생애 최초인 듯 마지막인 듯 허공을 응시하는 눈알 딸려온 물빛으로 반짝인다 이따금 아가미를 달막거릴 때마다 한 치 앞까지 다가왔던 파도가 자꾸만 더 멀리로 돌아가는 썰물 한때 굳어 가는 몸으로 얼마나 바다를 당겼는지 비늘의 갈피마다 모래가 끼어있다 물 한 모금이 전부인 저 어린 물고기는 길 밖의 세상에서 마지막 시간을 읽고 있었으리라 얼른 손바닥 위에 물고기를 올려 가만히 무릎의 물 깊이에 놓아주었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물결에 섞이며 헤엄쳐가는 구원 하나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내 모습을 감춘다 울 줄도 모르는 것이 슬퍼할 줄도 모르는 것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 제 길로.. 2021. 3. 22.
덩굴강낭콩을 심다 덩굴강낭콩을 심다/담채 황사 붉게 지나간 봄날 울타리 밑 남향에 덩굴강낭콩 씨앗을 묻었다 겨우내 강을 건너지 못한 오랜 기다림이 발아의 요람을 찾아가는 긴 며칠, 기도가 익는 시간이므로 자꾸만 귀가 자랐다 저 경건한 며칠, 소리 없는 이슬이 발끝을 세웠다 가고 파란 별들이 발목 근처에서 무수히 떴다 갔다 메마른 땅에서 차오르는 적막의 힘, 오래 앓은 신음과 어둠을 뚫고 온 씨앗들이 마침내 싹을 올려 지상의 소리에 귀를 적신다 저 여린 것들이 잇따라 허공을 쥐고 줄기를 올려 마디마디 콩 집을 매달 것이다 가만히 엎드린 채로 씨앗들이 걸어온 긴 문장을 읽는다 씨앗들의 빈 무덤 땅 밑이 고요하다 2021.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