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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사막에 들다(2)* 사막에 들다(2)/담채 서쪽으로 서쪽으로 한없이 가다보면 쓰라린 모래의 땅 사막에 닿으리 그 울음을 굴리고 굴리어 가면 죄 없이도 갈증하는 둥근 적막에 닿으리 내 몸속으로 들어온 낙타 한 마리 한 생의 짐 등에 업고 터벅터벅 모래산을 넘는다 풀도 나무도 한 마리 짐승까지도 다 지운 불멸의 땅 이곳에서 살찌는 것은 바람뿐 모래는 모래가 되어 모래로 흐르고 神도 聖者도명상처럼 마른다 꼿꼿이 태양을 받치고 향방 없이 사막을 떠도는 우리는 진실로, 얼마나 서로 아픈가 자고 나면 고독의 계시에 중독된 바람이 인간의 간을 맞추고 갈증이 그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으로 사막이 번져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신이 시리도록 마음 문질러서 하얀 마음 몇 조각 합장하는 이 하루 한없이 사라지고 또 순식간에 자라나는 모래산이 또.. 2023. 1. 20.
산정山頂에서* 산정山頂에서 /담채 ​바람이 우는 도봉산 산정 적막에 금이 간 듯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인멸하고 바람만 걸친 한 점의 적막 억새풀도 나무도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일제히 엎드려있다 엎드린 채 그대로 삶의 형식이 되어버린 낮아서 지혜로운 것들 마음 깊은 육신의 죄 눈물겹다 ​이 황량한 산정에서 고독과 싸우다 선 채로 죽는 것은 도도한 산정의 질서다 바람과 비에 깎인 풀과 나무들이 마른 피 같은 이파리 몇 개씩 붙들고 있다 육신의 무게를 다 버린 의지의 표상만 남아 있는 고립무원의 저 자리 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먼 한때 밀림의 흔적을 기억하는 풀과 나무들이 몸속에 박힌 울음을 날려보내고 있다 바람이 신음을 뱉어낼 때마다 밟힌 풀이 일어서듯 슬픔이 깃든 뼈를 수도 없이 굽혔다 세우며 먼 곳을 향하여 손을 .. 2023. 1. 19.
오후 3시의 적막* 오후 3시의 적막/담채 공사판 모래더미 위에 삽 한자루 푹, 꽃혀있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늙은 인부가 그 앞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다 아주 긴 시간 홀로 사막을 넘다가 신기루 바라보다 보다가 말다가 가난이 흘러가는 서쪽 영혼이 불려가는 동쪽 푸른 담배 연기가 혜성의 꼬리처럼 길게 번져나가는 오후 3시의 적막 하루하루를 건너가는 울음이 텅 텅, 정수리를 친다 *** 인부가 끌어안은 삶은, 자신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더욱 완강하게 자신을 붙잡는 삶이다. 하루하루를 건너가는 울음이 투명하다. 2023. 1. 17.
첫사랑 외 /담채 첫사랑/담채 그의 우물 속에 돌을 던지면 오래 있다 ‘풍덩’ 소리가 났다 한 번 들어간 바람이 다시 나오지 못하는 까마득한 비밀의 신전神展 멋모르고 가라앉은 바람과 구름과 지상에서 내려간 소리들 켜켜이 이끼로 피었겠다 사랑은 황홀을 동경하므로 시시각각 착시錯視를 불러들인다 늘 스스로 만든 덫에 삶을 다치고 마음을 벤다 간절한 사랑은 아득한 곳에 있으므로 사랑 /담채 사랑은 불확실하고 이별은 확실하다 그 인연 긴 江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면 그렇게 쌓인 울음 제 물빛 되는가 무제無題 /담채 엄동설한 대동강 얼은 물 백 바가지 퍼다가 내 살로 데워 너를 씻어주면 네 몸에서 꽃이 필까 눈물이 필까 2023. 1. 16.
풍화* 풍화/담채 하루의 시작, 티끌 같은 내가 움직인다 별은 흐르고 나무들은 묵상에 들었다 세월은 오늘도 주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내 자리를 지키기도 힘이 든다 우리의 늙어감은 오래 전 시작되어 빠르게 진행하는 풍화인 것을 퇴행은 가속이 붙고 운명은 바람을 일으키며 내달린다 지상에 있는 동안 뜨겁게 살아야지 가슴으로 살아야지 어떤 선한 詩人은 들꽃을 만나면 먼저 바람에 대한 묵념을 했다 2023. 1. 15.
수덕사修德寺 2* 수덕사修德寺 2/담채 뇌우 지나간 산기슭 견성암見性庵* 염불소리 산마루 넘어간다 꽃비로 흘러내린 찰나의 이름들, 한 잎 두 잎 꽃잎 떼며 산마루 넘어간다 스스로 가두어 짐으로 얹힌 인연 부처 앞에 사르고 먼 반야의 길 무릎으로 가는 비구니 분골 삼백사십팔계** 으서지며 으서지며 부처님께 가고 있다 고운 듯 슬픈 자태 바람 속에 걸어두고 물 같이 구름 같이 화엄으로 가는 비구니 모천에 돌아온 연어가 몸을 벗듯 생멸의 길 덜며 덜며 부처님께 가고 있다 세상은 아직도 이별이 자주 오고 무위의 약속들 끝없이 흘러가는 데 산새 다녀간 숲의 길에 다만, 고요가 깊다 * 충남 예산 修德寺 비구니 수련장. ** 비구니가 지켜야 할 348가지의 계율. 2023.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