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159 윤회를 생각함* 윤회를 생각함/담채 하늘의 독수리는 명상에 들고 맨발의 순례자들이 죄로 물든 영혼을 씻어내는 갠지스 강변 일주문도 없는 강이 귓바퀴 속으로 오목하게 들어앉아 물소리를 모아들이는 곳 돈이 넉넉하면 시체가 태워지고 돈이 부족하면 시체가 덜 태워지는 그렇게 믿어온 사람들이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룩하고 더러운 강 환시인 듯, 허공중에 만다라 꽃 피고 극락과 지옥이 뒤섞여 영원만이 팽창하는 흙탕물을 마시며 이승의 정죄와 인과의 그물을 걷어내는 저승의 나라로 희디흰 내 유골의 분말이 물 위에 둥둥 뜨면 수억 광년 늙은 우주층을 지나는 그 소리의 일부가 눈썹처럼 휘어질 때 해 달 별이 그려진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수레가 혼령을 실어나르며 윤회를 근심하는 찬란한 강가 먼지 같은 내 유골이 뜨거운 장작불 위에 뿌려지는 꽃.. 2023. 2. 4.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습니다/담채 세상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집니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인생은 유한하고 육신은 원래 가난한 것이라 늘그막에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우리가 온 곳으로 다시 가야 합니다 꽃은 썩어 거름이 되고 물은 말라 바람이 되는 것 누구나 떠날 때는 뼈를 파고드는 육탈의 고통으로 아프다, 아프다, 정말 아프다 합니다 어느 스님들이야 앉아서도 가고, 서서도 가고 바람처럼 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안개 같은 숨을 붙들고 모래 사막을 넘듯 땀 뻘뻘 흘리며 인연의 끈을 놓고 떠납니다 여태껏 세상에 아무런 빚도 지지 않은 어느 걸레스님 적막한 암자에 기어들어 떠나실 때 잠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들릴락말락 한 말씀 하셨다 '아... 괜히 왔다 간다.' 2023. 2. 4. 원근을 무시한 풍경* 원근을 무시한 풍경/담채 반나절을 왕복하여 흙탕물 한 동이를 이고 오는 마사이족 처자들 여전히 물웅덩이는 멀고 우기는 더 멀다 비극적으로 지구 곳곳은 지금도 이상기후 현상으로 몸살을 앓는다 비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도 물을 물 쓰듯 하는 기형적 귀족들 이 오아시스 주인들은 여러 아내까지 거느린 세습된 부자다 원근을 무시한 이 풍경 , 40주야 비가 내리면 노아의 홍수가 오고 100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세상은 사막이 된다 흙탕물 한 동이를 이고 반나절을 걸어와 그 물로 저녁을 짓는 아프리카 처자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자꾸만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이 불모의 땅에 지하수를 개발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엣직장 동료들이 있다. 비록 같은 직군이 아닐지라도 벌레가 들어갔다.. 2023. 1. 30. 우리가 다녀가는 세상은* 우리가 다녀가는 세상은/담채 까마귀 두 마리가 죽은 쥐를 사이좋게 뜯어먹고 있을 동안 어느 외딴 농가 처마 밑에서는 어미 제비가 새끼 여섯 마리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었다 주검도 길지 않은 어느 화장터에서는 두엄 냄새나는 삼 남매의 아버지가 불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잠시 잠깐 서늘하고 깊었을 뿐 지상의 한쪽에서는 꽃이 피고 한쪽에선 꽃이 지고 있었다 우리가 다녀가는 세상은 다만 죽고 사는 일로 애를 쓸 뿐, 생사도 윤회도 알 것 없었다 2023. 1. 29. 사랑은 외로운 것* 사랑은 외로운 것/담채 오래 이어진 이 신성神聖 사랑은 한 사람에게 가는 길이어서 내 안에 외로움을 키우는 일이다 사랑은 동행하는 것이므로 직열直列로 흐르지 말 것 다 주고도 준 것을 받으려고 하지 말 것 한 사람에게 흉터 같은 발자국 남겨놓고 떠날 때는 혼자서 가는 것 우리는 바라보기만 할 뿐 외로움과 그리움은 키우지 않아도 스스로 자란다 2023. 1. 29. 그렇게 산 날들이/담채* 그렇게 산 날들이/담채 처음 만나던 날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던 당신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은 다시 오르지 못할 山을 추억하는 일, 당신은 언제나 처음처럼 빛날 줄 알았는데 한바탕 꿈을 꾸고 나니 할머니의 시절이 왔다고 한다 자식들은 한때 엄마가 소녀였다는 사실을 믿기나 할까 사는 내내 당신은 늘 빛을 등지고 있었다 작은 평화 같은 식탁 위에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한 번도 먼저 수저를 댄 적이 없었다 돌아보면 그렇게 산 날들이 수없이 보태져서 당신의 魂을 더 고독하게 했을 일이다 지금은 주근깨 꽃밭이나 헤치며 도솔천으로 가는 꿈이나 꾸고 있을 당신 함께 늙어줘서 고맙다, 백발이 눈부시다 2023. 1. 17.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