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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어머니와 보리* 어머니와 보리/담채 남향집 울타리 안 작은 안마당 꽃과 나무들 사이로 군데군데 조금씩 비어있는 땅 이 손바닥만 한 땅 조각에 구순九旬의 노모가 겉보리 씨앗 한 줌을 뿌리고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한 뼘 공간은 그리움이 길을 낸 당신의 섬이다 젊어 홀로된 어머니 아직도 강을 건너지 못한 고독과 설움이 거름 되어 보리가 자랐다 연푸른 들녘에 안개 걷히고 울타리 밖 호박꽃이 연등처럼 켜지던 초여름 어머니는 엿기름용 보리 반 바가지를 수확하셨다 긴 가뭄 뒤 늦장마로 연일 비가 내리며 여름이 지나갔다 흑백의 영정 한 장이 삶을 꿇어 앉힌 겨울 초입 늦은 밤 어머니는 젊어 돌아가신 아버지 제상床 위에 마알간 식혜 한 그릇을 올리셨다 그 안에 간절한 다음 生을 들여놓고 그 고요 속을 들어오신 아버지께 앙금처.. 2022. 8. 26.
어미와 딸* 어미와 딸 /담채 갱년기를 지나온 아내가 설거지를 마치고 가루약을 털어 넣고 있다 마침 친정에 들른 딸을 보고 - 너 낳는다고 고생해서 그래 - 엄마, 무슨 소리야 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게, 까르르 까르르 모녀가 함께 웃는다 그 딸에게도 열 살 된 子息이 있다 같은 엄마인데도 한 사람은 어미이고 한 사람은 애기다 2012.04 2022. 8. 18.
모성母性* 모성母性 /담채 산란을 멈춘 암탉이 빈 외양간 구석에서 알을 품고 있다 며칠째 눈을 감고 물 한 모금 없이 깊은 면벽에 들어있다 세상 풍문에 귀를 닫고 스무 번이 넘는 낮과 밤을 극한으로 넘는 길 육탈肉脫이 지나갈 것이다 소금물을 삼킨 듯 갈증이 지날 것이다 폐허가 되고서야 어미가 될 것이다 2022. 8. 18.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담채 어린 두 아들을 둔 아들이 등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다 아들과 나는 몇 가지 우연이 겹쳐져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도 또 학원에 보낸다는 것 유랑하는 길이 멀어 자주 발바닥이 아프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 나를 닮아 일찍이 흰머리가 나폴거리는 이제 40중반의 아들 멍에를 걸고 밭을 가는 소처럼 걸어 걸어 등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다 70여 년 蘭世日記를 써오다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난 아들 말 없는 어깨가 참 긴 소리를 낸다 2022. 8. 16.
향일암向日庵에서* 향일암向日庵에서/담채 절 마당 아래로 무량한 바다 마디마디 허공을 쥐고 바라춤을 추듯 출렁거린다 산이며 바다며 끝없는 바람소리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물과 땅이 만나는 금오산에 나무 그림자 깊다 몸은 저절로 낮아지고 귀 열고 입산入山하는 것마다 소리를 낮추니 그 떨리는 걸음들이 어느 벌레 하나의 노래여도 좋겠다 이생의 고뇌가 온몸에 기록된 낡은 경전 같은 몸들이 만 가지 근심을 떠메고 애써 오르는 관음전 몸도 마음도 가뭄인 형태로 그 끝없는 발짝 소리 다만 보듬고 가노라면 언젠가는 내 몸도 새 뼈 얻어 잠깐 반짝이려나 바다로 달려가다 물을 만나 문득 멈춘 산 뿌리 돌로 된 형상을 버리고 싯다르타의 맨발이 된 바위와 거북이 된 바위들도 비 오면 젖고 눈 오면 추우니 우리는 모두 사는 일로 同病相憐인.. 2022. 8. 15.
먹어야 산다* 먹어야 산다/담채 막내딸 보고 싶은 늙은 어머니 분당에 가시고 초로의 사내가 밥을 짓는다 담배꽃 피고 진 뒤 홀로 남은 씨앗처럼 쩔쩔매는 늦가을 저녁녘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나에게 답을 하며 저녁밥을 짓는다 누구 하나 없이도 生의 보풀은 일어 끼니마다 들끓는 허기 肉身이란 도리 없이 배가 차야 일어나고 배가 비면 주저앉는 것을 산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일이다 안 먹으면 죽고 먹으면 산다 1998.10 2022.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