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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천사 천사 - 2020.06.14/담채 아내의 턱이 아파 함께 k대학 치과병원을 찾았다 미모의 50중반의 여교수가 말했다 잇몸도 건강하고 턱뼈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턱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이 뭉친 것 뿐이라고 이 간단한 이유를 얼마나 자상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는지 그 자체로 천사다 의사는 장장 30여 분을 웃어주었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나는 이 신기한 장면을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진료 중인 의사에게 기념 사진 한 장 찍자고 할 뻔했다 다음 주에 병원에 갈 땐 허접한 내 시집 '노년일기'를 전해야 하겠다 병원을 나서는 돌계단 장엄한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2022. 9. 2.
가을 들녘에 서서* 가을 들녘에 서서 /담채 나무는 잎이 가장 가벼운 때 그들을 보낸다 궁극으로 돌아가는 것들은 가진 것이 없다 씨앗의 고동과 한 순간의 열정이 살다 간 자리 텅 빈 가을 들녘에 서면 간절했던 자리마다 빈손으로 떠도는 바람소리 2022. 8. 31.
가을밤3 외* 가을밤3 /담채 백 송이 천 송이 꽃을 피운 구절초 옆에서 귀뚜라미 밤새 운다 다리 하나 부러지고 날개 하나 찢어지고 그러고도 밤새 마파람 등지고 운다 수척한 은사시나무 숲이 마르다 마르다 헝클어지는 밤에 그대여 어느 그리움에 무릎 꿇고 있는가 2003.10 安眠島에서 가을밤 2 /담채 오래된 침대를 버리고 나서 더 넓어진 방 나는 혼자이고 바람은 수행 중이다 오지 않을 사람이 많이 그리운 시간 나무는 오늘 밤도 혼자서 잎을 보낸다 2001. 10 安眠島에서 2022. 8. 30.
간월암看月庵에서* 간월암看月庵에서/담채 西海에 물이 차면 천수만 간월암*이 물 위에 뜬다 극락도 아수라도 그 아래 삼백예순 날 노승 두엇 부처님께 비는지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린다 나는 그 길을 밟고 암자에 들어 천리향 꽃향이 번지는 절 마당에 서 있다 멀리 온 것 같으나 길은 제 자리 나는 없고 고요한 목조보살좌상 하루에도 천만 번 생각을 닦는다 2012.05 note * 瑞山市 浮石面 간월도에 있는 작은 암자. ( 만조 시 물이 차면 섬이 되고, 하루에 두 번 간조 때마다 바닷길이 열린다) 2022. 8. 30.
미로迷路* 미로迷路/담채 아침이면 알아서 해가 뜨고 저녁이면 알아서 해가 지는 그 길은 언제나 정확했다 벌 나비 다녀간 자리 한 줌 욕망도 순하게 엎드린 칠십 넘은 나이 저녁이면 알아서 해가 지는 것처럼 나도 가야 하는 것이라면 아마도 그날이 이맘때쯤일 것이다 어디로든 날아갈 듯 마음 안에 돋은 날개가 축축하게 젖어있다 나무는 죽어서도 천 년 바람 소리를 듣는다는데 뿌리 없는 부초의 귀로 미로를 짚어가는 이 하루 문득 시드는 화초를 본다 멀리, 흙에서 발바닥을 뗀 사람들이 만장처럼 펄럭인다 2022. 8. 28.
공가空家* 공가空家/담채 식은 아궁이 속 외톨이 개미가 마른 쥐똥을 부수고 있다 흙바닥 부엌 쪽 나간 짠지 항아리 그 위 귀뚜라미 적막을 갉는다 비바람에 삭고 삭아 소리 없이 스러지는 공가空家 풀씨 여무는 마당 떠돌이 거미 한 마리 죽은 하루살이 붙잡고 긴 궁리에 빠져있다 2022.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