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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운명運命* 운명運命/강성백 운명이란 누구나가 걸치고 있는 한 벌의 옷과 같다 우리는 한 벌의 옷을 걸치고 길을 가며 한 벌의 옷을 걸치고 세상을 건너간다 더러워진 옷은 세탁을 구멍 난 옷은 수선을 하여 단정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것과 같다 사랑을 잃은 사람이 인생에 실패한 사람이 운명만을 탓하는 것은 구멍 난 옷을 그대로 입는 것과 같다 운명은 스스로가 만드는 궤적에 따라 시시각각 재편된다 2022. 8. 5.
기다리는 동안* 기다리는 동안/담채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서니 혼자다 종일 비워둔 공간에서 적막이 집을 지킨다 적막이 일상이 되어버린 빈집에 앉아 난초 무늬 다기에 찻잎을 띄우고 찬물 깊이 끓인다 돌돌 말렸다 펴지는 눈록嫩綠의 찻잎에서 맑은 대나무 향이 올라왔다 마른 이마 문지르며 내려앉은 다탁 앞 조용한 공복과 허기 사이 찻잔을 감고 오르는 향이 잡생각의 틈새를 적신다 어떤 미움이라도 용서하고 싶은 잉여의 시간 둥근 저녁을 애벌레의 마음으로 느릿느릿 기어가는 내가 보이고 사람이 그리워 틈틈이 귀가 열리는 동안 찻물이 다 끓었다 먼저 하루를 애써 걸어온 나에게 차 한 잔을 따른다 또 한 잔은 백팔 배를 마친 아내가 조금씩 무릎 절며 귀가할 것을 기다리며 약한 불에 오래 찻물을 데운다 보시를 준비할 때처럼 .. 2022. 8. 5.
여승과 핸드폰* 여승과 핸드폰/강성백 바랑을 멘 여승이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 문자를 보내고 있다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듯 한 자 한 자 글자를 찍는다 갈 길은 멀고 지하철은 흔들리는데 저 너그럽고 둥근 下心 바람과 구름을 넘어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군가는 노을 지는 길 위에서 누군가는 싸리비 지나간 절 마당에서 길 위의 소식을 받고 따뜻한 저녁이 오기를 기도하게 될 것이다 목마른 求道의 맨발들이 모래 우는 광야의 언덕에서 붓다를 기다릴 때 저 핸드폰이 있었더라면 발바닥이 갈라지지 않고도 사막을 건넜을지 모른다 이 땅에 淨土를 세우는 가파른 수행의 길을 질러왔을지 모른다 사바의 중심에서 무한의 시공을 건너가는 저 무형의 문자처럼 고단한 그 길에 파문이 없기를 ​2009.09 ​ 2022. 8. 5.
저녁상* 저녁상/담채 소나무처럼 고요한 외딴집 황혼의 부부가 저녁상 앞에 앉아있다 정지에서 방 안으로 오래 들락거린 밥상 위 다 식은 반찬 서너 접시 돌멩이도 익는 불볕 아래 고추밭에서 돌아온 노부부가 석양보다 붉은 적막을 말없이 젓가락질하고 있다 2022. 8. 2.
귀로歸路* 귀로歸路/담채 도살장에 실려 가던 늙은 개가 구사일생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속절없는 生을 알았는지 땅만 보고 걸어간다 팔랑팔랑 나비가 따라와도 본체만체 까치가 울어도 본체만체 몇 십 리 에움길 돌아 집으로 가고 있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이별이 먹먹한 빈 집, 그곳에 드는 순간 다시 도살장으로 끌려갈 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에게 가고 있다 걸음마다 밟히는 울음 차례로 끌어 안고 절룩절룩 집으로 가는 길 두 눈에 이슬 가득 등짝에 노을 한 짐 2022. 8. 2.
세한도歲寒圖* 세한도歲寒圖 /담채 바람이 분다 생각 속에서 환생하는 길들 어디로 가는 길이길래 바람으로 흩어지며 생의 마디마디를 이리도 저미는가 추워라 외진 바다 기슭 그 어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유배의 길 위에서 헝크러진 삶을 쓸고 있는가 황량한 빈들에 푸른 송백松柏과 그 아래 초막 한 채 녹지 않는 눈雪을 이고 덧없는 세상 다시 보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짐승들이 끝내 운다 * note 歲寒圖는 秋史 金正喜(1786~1856)가 59세 때 유배지 제주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서책을 보내주는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린 작품이다. 그림 전체는 세한도를 그리게 된 동기와 의미를 담은 발문으로 되어있는데 이후 그림을 본 이들의 감상문이 추사의 발문 옆에 11m에 걸친 두루마리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제자 이상적.. 2022.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