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621

生의 길 生의 길/담채 살얼음판 生의 길 한 걸음 한 걸음이 쓰라린 문장이다 生의 길은 어디에나 언덕이 많은 것인데 입만 열면 百歲人生 말을 하니 사람이 점점 귀신을 닮아간다 인생의 노래가 쓸쓸한 것은 모두가 오래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제도 내일도 없이 달랑 오늘을 사는 하루살이를 생각하며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무도 풀도 이 행성에서 늙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다 note 단 하루를 살면서도 해 뜨는 거 보고 해 지는 거 보고 사랑하고 알을 낳고 제 할 일 다하고 삶을 불사르는 하루살이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면 오래 산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루살이의 일 년이 사람의 100년보다 짧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2024. 3. 22.
겨울 덕수궁에서/담채 겨울 덕수궁에서/담채 황홀한 시작과 쓸쓸한 최후가 둥그런 돌담 안에 멈춰있다 아직도 천둥소리 마른번개 번쩍이는지 蒼然한 경내를 황급히 벗어나는 한 무리 새떼 백 년 이백 년 오백 년 飛龍의 금물결 아득히 흘려보내고도 여전히 찬란한 물결 南柯一夢을 바라보는 나무와 풀과 저 높은 돌계단 하나하나 무엇을 내리며 긴긴 시간의 물거품을 휘젓고 있는가 오늘도 구름은 저를 허락하여 바람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 땅이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뜨고 졌을 무수한 일출과 일몰 돌아올 데 없는 빛과 그림자 어디에 닿고 있는가 먼 데서 佛頭花 꽃잎 피었다 지고 한 치 앞 저승 쪽에서 또 다른 윤회가 걸어서 오는 천지간 한때 우리가 가고 온 길 다 지우는 눈보라여 2024. 3. 22.
가락 가락 /담채 "고장 난 냉장고 삽니다아 피아노 삽니다 에어컨 세탁기 삽니다~아~~~ 고장 난 가전제품 삽니다~아---" 올라갔다 내려가고 내려갔다 올라가며 다시 이어지는 저 고달픈 가락, 잠시 끊어졌다가 "고장 난 물건 삽니다~아---" 이런 이런 나를 사겠다는 소리 아닌가 알고 보니 고장 난 가전제품은 헐값 중에도 헐값이란다 70년 넘게 구부러진 내 生 고장 난 허리 어깨 무릎, 소금꽃 하얗게 흘러간 등짝 모두 팔아버리고 싶은, 하늘이 샘물같이 맑은 날 불현듯 고물장수 확성기 소리가 나를 끌고 간다 골목으로 골목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나를 끌고 간다 한 생을 소처럼 걸어온 나를 지금 내다 팔면 아주, 아주 헐값일 것이다 2024. 3. 21.
西海에서... 西海에서... 여기에 있는 글들은 내나름의 방치된 사유思惟들이다. 문학적 성취를 위한 것도 아니고 여기 모인 무절제한 시편들은 글쓰는 동안이라도 자유롭고 싶은 내 일상의 습관이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30여 년이 넘는 주말부부생활과 정년 후 얼마 되지 않는 서울생활의 불안정한 날들을 지나며 일기처럼 써내려간 글이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글을 쓰지 말 것과 맑은 소리를 내는 글을 써야 하는데 혼자 가야하는 이 길은 언제나 아득하다. 길 위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일 때가 많았지만 이 방(西海에서...)에서의 시간만큼은 하루에 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나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나나 평등해지는 시간이다. 바람도 알지 못하고 구름도 보지 못하는 이 조용한 숨소리가 오늘의 자리를 떠나더라도 그리움 하나 .. 2024. 3. 19.
시시한 일상 시시한 일상/담채 지난겨울 나는 최소한의 외출을 하며 시시한 일상을 사랑했다 98세 노모의 목소리를 들은 날은 슬픈 어머니에 기대어 하루를 살고 私的인 내 하루는 정치뉴스에 시달렸다 (2024.4.10.은 총선거가 있다) 무시이래 귀족적이지 못했던 나는 사치스러운 부류에 속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多數일 수 없는 나의 心友에게 안부 카톡을 보내고 권태의 후폭풍을 맞는다 서럽지만 장하고 눈부신 이 하루 시간이 자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2024.03.17 2024. 3. 17.
고물상 가다 고물상 가다/ 아들은 장가가고 딸은 시집가니 좁은 방에 읽다 만 책들만 가득하다. 두 자식에게 전문서적이라도 가져가라 했더니 그냥 다 내다 버리라고 한다. 딸은 대학시절 화장 한 번 데이트 한 번 못 해보고 사법시험 준비를 했고 아들은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전문서적만도 꽤 많은 양인데 그 많은 걸 다 버리라고 하는 말에, 내가 공부할 때 귀한 식량을 덜어 비싼 책을 사주셨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내가 사들인 문학서적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승용차로 이 책들을 싣고 세 차례나 고물상을 들락거렸다. 기어코 쌀알이 되지 못한 수많은 활자들을 고물상에 퍼다 버렸다. 폐지 값 66,000원을 받아 쥐고 허전함을 주체하지 못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니 부연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고물상.. 2024. 3. 15.
봄마중 봄 마중/ 담채 다시 오는 봄, 사연 많은 이 땅에서 나목으로 서 있던 나무들은 순을 밀어내기 위해 묵상에 들었다 지나간 겨울은 춥고 길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우울과 고뇌가 전속력으로 가라앉는 꽃을 만나기 위해 나는 관찰자가 되어 있다 미세먼지 지나는 3월 아침 오늘은 바람이 계란처럼 순하다 겨울 동안 혹한에 떨다가 꽃 먼저 밀어내던 목련 나무는 花信의 전령사처럼 봄소식을 알릴 것이다 밤이 짧아지고 있다 햇살과 바람과 소생을 염원하는 내 마음이 봄을 데리고 온다 2024.03.14 note 불가사의한 자연의 치유력으로 시간이 흐르면 다시 태어나는 계절의 왕은 단연 봄이다. 보통은 1㎡의 밭에 7만5천개의 풀씨가 잠자고 있다는데 물과 온도가 적합해도 햇빛을 못 보면 싹을 틔우지 않고 땅속에서 10년~20년을.. 2024. 3. 13.